발행인 황호덕
발행인 황호덕

바야흐로 ‘선거의 시간’이다. 2024년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른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 거는 기대를 한 마디로 압축하면 ‘투표하지 않는 자는 불평할 권리도 없다’는 것으로 표현하고 싶다.

투표는 가장 가치 있는 것 중 하나고, 투표율은 그 가치를 확인하는 디딤돌이자 주춧돌인 까닭이다.

잠시 2020년 4월 15일에 치른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생각해본다. 21대는 만 18세 이상 유권자가 처음으로 참가한 선거다.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적용한 첫 선거다. 또한 21세기에 태어난 사람이 처음으로 투표한 선거다.

21대는 국회의원 총선거와 재보궐선거도 동시에 치렀는데, 무척 중요하고 반가운 것은 투표율이 아주 높았다는 점이다. 사전투표율은 11일 오후 6시 기준으로 26.7%를 기록, 2014년 첫 시행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뿐만 아니다. 투표 당일 최종 투표도 66.2%를 기록해 28년 만에 최고 투표율을 기록했다.

선거와 민주주의는 뗄 수 없다. 암수한몸과 같다. 민주주의에 대해 M. 간디가 한 말처럼 선거와 민주주의는 가장 약한 자가 가장 강한 자와 똑같은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선거철’만 되면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이 표심을 잡느라 ‘굽실굽실’이 자동화 기계처럼 연속과 반복을 이어가는 상황을 이제는 반드시 끝내야 한다.

사람은 정치적 동물이다. 그렇기에 국가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신과 같은 존재이거나 사람으로 보기 어려운 존재로 생각할 정도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 만큼 선거는 ‘씨앗’을 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씨앗을 하나도 심지 않고, 벽돌 한 장 쌓지 않고, 옷 하나 짓지를 않고, 정치만 천직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그는 국민에게 재앙만 가져다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과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안창호가 “참여하는 사람은 주인,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손님”이라고 했던 말은 선거의 시간인 지금, 바로 지금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행동을 요구하는 명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프랭클린 P.애덤스가 “선거란 누굴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라는 말과 닮은 것이기도 하다.

생각하기와 비판하기는 선거와 정치에서 아주 중요한 필수요건이자 필요충분조건이다. A. 히틀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좋은 정치가 아닌 나쁜 정치를 하려 했던 히틀러에게 ‘생각하는 사람’과 ‘비판하는 사람’은 죽이고 싶을 정도로 혐오스러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정상배(政商輩)와 정치가(政治家)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전자는 정치인과 결탁해 정치적 수단을 이용해 사익을 취하는 무리다. 반면 후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의견을 조정하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정치인이다.

우리는 좋은 뜻에서 직업정치가(職業政治家)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소망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현혹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려 재주를 부리는 선동정치가(煽動政治家)는 절대 원하지 않는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치가로서 사람들이 널리 알고 있을 만큼 위대한 대정치가(大政治家)를 원한다.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말이 있다. 훌륭한 정치와 정치가는 백성의 눈물은 닦아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군주정치(君主政治)가 타락하면 폭군정치(暴君政治)이고 귀족정치(貴族政治)가 타락하면 과두정치(寡頭政治)며, 민주정치(民主政治)가 타락하면 중우정치(衆愚政治)라고 말한다.

어려운 시절인 지금,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정치와 정치가가 필요한 때다.

투표하자. 기권은 중립이 아니라 암묵적 동조다.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자가 돼야 한다. 투표하지 않는 자는 불평할 권리도 없다.

정치 참여를 거부해서 얻는 불이익 중 하나는 하등한 존재에게 지배를 당하는 것이라는 플라톤의 말은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22대 국회의원 선거는 꼭 투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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