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에 있는 아홉 기의 왕릉

동구릉(東九陵)은 왕의 묘(墓, 무덤), 즉 왕릉(王陵)이다. 동구릉은 왕의 묘가 여러 개 있어 왕릉군(王陵郡)이라 부른다. 왕의 가족이 있어 가족능(家族陵)이기도 하다. 사적 193호인 동구릉(東九陵)은 조선 500년 역사를 간직한 국내 최대 왕릉군이다. 조선왕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됐는데, 동구릉은 2009년 등재됐다.

조선왕릉 중 한 지역 안에 왕릉군을 이루고 있는 곳은 동구릉 외에 서오릉(西五陵,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과 서삼릉(西三陵,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이 있다. 이 중 동구릉에 가장 많은 무덤이 있다. 조선왕릉은 조선 왕조 역대 27명의 임금과 왕비, 추존왕의 무덤들이 있다.

그러나 반정으로 축출된 임금인 연산군과 광해군은 능(陵) 지위가 아닌 묘(墓) 지위에 있어서 왕릉이 아닌 묘로 분류돼 있다. 또한 연산과 광해는 반정에 연루돼 쫓겨난 바 있어 서울 종묘에서도 모시지 않았고, 조선 왕조가 멸망하는 시기까지 묘 지위를 유지했다.

동구릉은 ‘도성의 동쪽에 있는 아홉 기의 능’이라는 뜻이다. 조선 태조부터 문조까지 7명의 왕과 10명의 비를 안장하고 있어 우리나라 최대의 왕릉군이다. 능이 생길 때마다 동오릉·동칠릉이라 불렀는데, 1855년(철종 6년)에 수릉이 옮겨진 이후 동구릉으로 굳어졌다.

동구릉은 숲 면적이 191ha(약 57만 7,775평)에 달한다. 1ha는 대략 상암동축구장 또는 잠실야구장 1개 정도이니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숲길이 잘 돼 있어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산림욕과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조선왕조 특유의 자연친화적인 공간 배치와 왕릉의 장묘 문화, 독창적 예술성, 조상숭배 전통 등을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왕릉의 겨울 풍경

2024년 2월 22일 오후 1시 무렵,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인창동)에 있는 동구릉(東九陵)을 찾았다. 봄처럼 온화하던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지더니 이틀 연속 눈이 내린 날이다. 강원도 지역은 폭설 때문에 사고도 나고 생활하기 불편하다는 뉴스를 접했지만, 수도권은 심하지 않았다. 덕분에 ‘왕릉의 겨올 풍경’을 느낄 수 있었다.

● 숲길

대한민국 최대 왕릉군인 동구릉은 왕릉에 들어가는 입구와 그 사이로 여러 갈래의 숲길이 있다. 매표소를 지나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게 홍살문(紅箭門)이다. 홍살문은 왕릉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려주는 건축물이다. 능(陵)을 비롯해 원(園)·묘(廟)·궁전(宮殿)·관아(官衙) 등의 입구나 충신·효자·열녀를 표창해 임금이 그 집이나 마을 앞에 세우도록 한 붉은 문이 홍살문이다. 홍전문(紅箭門), 홍문(紅門)이라고도 한다.

동구릉 숲길은 홍살문을 지나면서부터 갈참나무와 소나무가 하늘 사이로 손을 뻗고 있는 풍경을 보면서 시나브로 걸으며 산책할 수 있다. 조금 가다 보면 오른쪽에 있는 재실(齋室)이 보인다. 재실은 평시에 능참봉이 근무하며,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능역을 관리하며 수호하는 사람들의 근무 장소다. 재실은 또 왕릉으로 갈 수 있는 갈림길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왕의 숲

동구릉 숲길은 휘릉부터 원릉, 경릉부터 자연학습장으로 이어지는 숲길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무 데나 가도 좋다. 가는 길마다 소나무와 갈참나무가 있고 봄에는 철쭉을 비롯해 여러 꽃나무를 함께 볼 수 있다. 왕릉을 오가는 중간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으니 잠시 ‘물멍’을 보내기에도 좋다. 특히 소나무는 겨울에도 낙엽이 떨어지지 않는 사계절 푸른 상록수라는 점에서 장수를 상징하기 때문에 능의 배후와 측면에 많이 심었다고 한다.

혜릉(惠陵)과 경릉(景陵)으로 가는 길로 들어서기 전에 만나는 곳이 ‘왕의 숲’이다. 소나무 향내를 맡으며 한가롭게 고즈넉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길이다. 푯말에는 ‘왕의 숲 가는 길’이라 돼 있다. 이곳에서는 10여 명의 어르신이 산책길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의자 위에 내린 눈을 쓸어내고 있었다. 공공근로를 나왔다고 한다. 눈을 치우는 것을 보니 눈이 없는 날에는 휴지 등을 치우는 등 소소한 일을 하는 모양이다.

혜릉, 경릉을 지나 원릉(元陵), 수릉(綏陵), 현릉(顯陵)을 돌아보고 다시 재실 방향으로 오다가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쓰러진 모습을 봤다.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어 쓰러진 것 같았다. 소나무 뿌리가 있는 옆은 길이 있어서 길이 난 쪽으로는 뿌리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소나무 가지에 눈이 쌓인 만큼 무게가 늘어난 상황에서 어제오늘 사이에 비바람과 눈바람이 불었으니 무게를 견디기 어려워 쓰러졌을 것이다.

왕릉 가는 길

조선왕릉은 구리 동구릉을 비롯해 남양주, 서울, 고양, 김포, 파주, 화성, 양주, 여주, 영월, 개성(북한) 등 여러 곳에 있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동구릉처럼 왕의 묘를 찾아가는 역사와 휴식과 쉼을 얻을 수 있는 산책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500년 역사와 조선시대의 국가통치 이념인 유교와 그 예법에 맞춰 시대에 따라 다양한 공간의 크기, 문인과 무인 공간의 구분, 석물의 배치, 기타 시설물의 배치 등이 특색을 띠고 있다. 특히 왕릉의 석물 중 문석인, 무석인의 규모와 조각양식 등은 예술성은 물론 조금씩 차이가 있어 시대별로 사상과 정치사를 반영하고 있어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뛰어난 문화유산이다.

 

*구리동구릉건원문화제

조선왕릉 중에서 가장 큰 왕릉군을 이루고 있는 동구릉이 있는 구리시에서 주관하는 축제다. 태조와 문종, 영조의 왕릉이 있는 동구릉의 역사적 가치를 되새기고 널리 알리고자 만든 축제다. 2003년까지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주관으로 ‘건원릉친향기신제’가 열리다가 2004년부터 구리시가 주관하면서 ‘구리동구릉건원문화제’로 바꾸고, 문화축제를 추가했다. 매년 5월 중에 축제가 개최하며, 주요 행사는 어가행렬과 민속공연, 시민백일장 등이 있다.

어가행렬은 새로운 왕이 등극했을 때 건원릉에 참배하러 가는 조선 시대의 어가행렬을 재현한 행사로 구리시 내에 거주하는 시민과 학생들이 참여한다. 이 중 왕과 세자는 나이와 풍모 등의 특별 조건을 제시하는데, 이때 뽑힌 왕과 세자는 새로운 사람이 선발되기 전까지 어가행렬 및 관련 행사에 왕과 왕세자 참가 기회나 구리시 홍보대사 자격 등 몇 가지의 혜택을 준다.

어가행렬은 조선 초기의 복장을 재현했으며, 행사에는 약 400명, 2마리의 말이 동원된다. 어가행렬에는 크게 대가노부(大駕鹵簿)와 법가노부(法駕鹵簿), 소가노부(小駕鹵簿)의 형식이 있는데, 능행어가행렬에는 소가노부의 형식을 적용한다. 어가행렬은 아침에 구리시립체육공원에서 출발해 동구릉 내에 있는 혜릉까지 행렬한다. 어가행렬 직후에는 건원릉에서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주관으로 ‘건원릉친향기신제’를 지내며, 그 뒤 원릉에서 시민백일장을, 재실 앞마당에서는 산대공연과 함께 대금산조, 궁중군악, 태평무, 현대 국악 등 각종 민속공연을 진행한다. 행사 하루 전에는 만 20세가 되는 성년을 대상으로 성년례 재현 행사도 진행한다.

-자료=위키백과

 

*세계문화유산 등재

처음에는 동구릉이 있는 구리시에서 왕릉 관광지 개발을 위해 2003년에 동구릉의 등재를 추진하다가 2004년에 문화재청이 조선왕릉 40기에 대한 일괄 등재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2008년 1월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해 9월에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현지 조사가 이뤄졌고, 2009년 1월에 ICOMOS는 일부 조선왕릉 주변지대의 분류와 주변 시설에 대한 철거에 대한 문제 해결을 문화재청과 한국 정부에 요청했고, 이에 대한 답변을 확인하고서 그해 5월에 ‘등재권고’가 적힌 평가보고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했다. 2009년 6월 27일, 유네스코는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조선왕릉 40기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자료=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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