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보훈지청 복지과 안지원

경기북부보훈지청 복지과 안지원

한중수교가 이뤄진지 얼마 안 된 1992년 무렵, 성신여대 교직원 최찬규 씨는 수취인 불명으로 버려진 우편들을 정리하다가 중국 우표가 붙어있는 특이한 편지를 발견한다.

호기심에 편지를 뜯어본 그는 그 편지의 수취인, 조창숙 씨를 찾아 편지를 그녀에게 전달한다.

편지를 보낸 이는 40여 년 전 6.25 전쟁에서 죽은 줄 알고 있던 그녀의 남동생 조창호 씨였다.

연희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창호 씨는 6.25 전쟁 때 자원입대 했으나 1951년 인제군 전투에서 포로로 붙잡혀 북한으로 끌려갔다.

그는 동료 포로들과 탈출을 계획하다가 발각돼 강제 노역소를 전전하며 복역하였다.

오랜 강제 노역으로 규폐증에 걸린 그는 압록강변의 산간 마을로 보내졌다.

거기서 알게 된 한 조선족 상인은 최근 한중수교로 한국과 중국 간 서신 교환이 가능하다고 알려주며 남한의 가족에게 편지를 쓰면 전달해주겠다고 했다.

창호 씨는 그의 말을 듣고 가족에게 40여년 만에 편지를 썼다.

주소를 어디로 쓸지 고민하던 그는, 누나가 성신여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던 것을 기억하고 성신여학교로 편지를 보낸다.

수취인 불명으로 버려질 뻔 했던 편지를 찬규 씨가 발견하여 창숙 씨에게 전달했다.

남동생이 살아있다는 것을 안 창숙 씨는 그를 남한으로 귀환시키려 애썼고 1994년 10월 23일, 창호 씨는 해상을 통해 북한을 탈출해 남쪽으로 왔다.

그는 북한에 납치됐다가 남한으로 돌아온 국군포로 1호이다.

국군포로는 6.25 전쟁의 휴전협상 과정에서 북측에서 송환되지 않은 국군 실종자를 의미한다.

정전협정 때 한국과 UN군은 3만여 명의 북한군 포로를 송환했으나 북한은 포로들이 전향했다는 이유로 8만여 명의 포로 중 8천여 명만 송환했다.

그러나 북한이 전향했다고 주장하며 귀환시키지 않은 포로들 중 일부는 탄광에 징집돼 강제 노역을 하였고 북한 내에서도 적대계층으로 분류돼 자손도 차별을 받았다는 사실이 조창호 씨처럼 귀환한 국군포로를 통해 알려졌다.

그를 시작으로 80여 명의 포로들이 북한을 자력으로 탈출해 남한으로 돌아왔다.

한 사람의 삶이 전쟁의 한 복판에서 완전히 사라졌었다.

그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가족들조차 모른 채 70여년이 흘렀다.

아무도 없던 곳에서 그들은 홀로 견디고 탈출했다.

보훈처는 귀환한 국군포로들이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도록 국립묘지법 개정을 추진하고 귀환하지 못한 국군포로를 위한 추모시설을 건립한다.

2023년 4월 이뤄진 한미공동성명에는 처음으로 한, 미 양국이 납북자와 억류자, 국군포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내용이 추가됐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밝히기 위해 멀고 험한 길을 돌아 탈출한 이들을 위해 이제라도 뭘 할 수 있는지 좀 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기북부보훈지청 보훈과 행정주사보 문지우

6‧25로 재조명하는 현 시점

6‧25의 발생 배경관련 여러가지 설이 있다.

한가지로 정의 할 순 없지만 복합적인 정세와 열강들의 자국 실리를 위한 돌파구로 6‧25가 발발되었다라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적인 측면을 보자면, 2차대전 후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세계경제 패권을 쥐게 된 미국이 1948년 경제공황에 빠진다.

중국의 국공내전은 미국의 지원을 받던 국민당이 퍠하고 공산당이 집권하게되고,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미국과 소련이 핵균형을 이루게 될가능성을 높인다.

2차 대전이후 미국과 소련의 이념 차이는 두국가간 냉전체제를 가져오게 하였고, 일본의 제국주의 이념으로 세계평화라는 명목하에 미국 진주만을 공격하며 전쟁이 시작되었고, 원폭투하로 인한 일본의 항복으로 우리나라는 독립국가가 되었다.

이후 소련과 미국의 이권다툼으로 도움을 준다는 명목하에 남․북한

군정정치가 시작되었고 남북한은 짧은기간에 원수지간이 된다.

남한이 다시 미국의 식민지가 되는 것 아니냐는 집단들의 반발을 우려한 미국은 우리나라에 부기 원조를 하지 않았고, 우리나라의 공산화를 원하는 소련과 중국의 군수지원으로 무기우위를 점한 김일성의 북한 이 남한을 침공하게 된다.

결국 열강들의 이권다툼의 현장이 된 남한과 북한은 모두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국토의 대부분이 폐허가 되었다.

현 시점의 국제정세를 보면 90년대 변화의 물결과 2000년 화합의시대는 지나고 다시 냉전의 분위기이다.

러. 우전쟁, 중국과 미국의 경제패권 다툼, 중국의 하나의 중국 및 일대일로, 일본의 경제적 몰락 등 한국을 둘러싼 정세들이 한국에게 편가르기가 강요되고 있다.

6‧25시점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경제적 군사적 여건은 강화되었지만, 한국이 주변 국가들에게 필요한 상황은 유사하다.

전체적인 흐름에 촉각을 세우고 위협의 명분을 주지 않도록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할 때이다.

목소리는 경제적, 군사적으로 성장하면 당연히 커진다.

현 시점이 위협이라고 생각한다면, 내부적인 편가르기와 이념싸움보다는 외부 위기라는 공감대를 형성하여, 온 국민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IMF를 극복한것처럼 한 목소리로 실리적인 성장 및 군사적/외교적 강화를 해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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