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11대 임금 중종(1506~1544) 태(胎) 모신 곳… “가평 향토문화재 제6호 지정”

▲사진-중종대왕 태봉 전경 
▲사진-중종대왕 태봉 전경 

가평저널이 창간 10주년을 맞이해 내 고장 역사문화탐방으로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상색리에 위치한 중종대왕 태봉(中宗大王 胎峰)을 찾았다. 이곳은 조선조 11대 임금인 중종(1506~1544)의 태(胎)를 모신 곳으로 1986년 6월 19일 “가평 향토문화재 제6호”로 지정됐다.

중종대왕태봉(中宗大王胎封)은 조선시대 태봉의 구조를 학습할 수 있는 귀중한 유적으로 태봉이 발견된 경위는, 1982년 12월 산주인이 장례를 치르기 위해 작업을 하던 중 태(胎)를 봉안했던 돌 항아리로 지름 100cm, 높이 120cm인 태항아리가 출토됨으로써 이곳이 태봉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부근에는 파손된 거북비석을 비롯하여 난간석 등이 흩어져 있었는데, 이는 일제침략기 일본인들의 도굴로 인하여 파손되고 방치되었던 것이다.

출토 뒤에 한동안 상색초등학교로 옮겨 전시·보관하였다가 1986년 향토유적으로 지정되면서 1987년 오늘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태봉은 중앙에 태실비를 보수하여 세웠는데 머리가 없어진 거북돌과 가운데를 보수하여 이어 붙인 빗몸돌, 새(新) 돌로 만들어 덧붙인 받침돌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태항아리를 묻은 태옹
▲사진-태항아리를 묻은 태옹

조선 중종(1488~1544)은 성종의 둘째 아들로 연산군의 이복동생이며, 어머니는 정현왕후이다. 태실은 가평현(加平縣)에 있었는데, 왕위에 오른 지 2년째 되던 해인 1507년 가평현을 군(郡)으로 승격하고 태실에 돌난간을 설치하는 등 왕의 태실로서 위의를 갖추었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 이왕직(李王職)에서 전국에 산재한 태실 54기를 한곳에 모아 관리한다는 방침에 따라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으로 이봉되었다.

1982년 이곳에서 석함과 석조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을 수습하여 향토유적으로 지정한 뒤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하였다. 중앙에는 중종이 5세 때 세워진 작은 태실비(아기비)를 보수하여 세웠는데, 비신(碑身)은 높이 75.5㎝, 너비 48㎝, 두께 19㎝이고, 지붕돌의 높이는 50㎝이다.

그 옆에 즉위한 뒤 가봉한 태실비를 세웠는데, 비신의 높이는 중간 부분이 없어져서 보충한 52㎝를 포함하여 116㎝, 너비 53㎝, 두께 21.5㎝이며, 지붕돌은 높이 45.5㎝이다.

이밖에 머리가 없어진 거북비석과 새 돌로 만들어 덧붙인 받침돌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태실 안에 있던 태항아리와 태지석(胎誌石)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사진-태실비 
▲사진-태실비 

태실(胎室)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를 봉안하는 곳으로 일반적으로 태옹(胎甕)이라는 항아리에 안치하는 것이 통례이나 왕세자나 왕세손 등 다음 보위를 이어받을 사람의 태는 태봉(胎峰)으로 가봉될 것을 감안, 석실을 만들어 보관하였다.

태를 태실까지 봉송하는 절차와 봉안하는 의식도 까다롭다. 왕자나 공주·옹주가 태어나면 태를 봉안할 장소를 관상감(觀象監)에서 물색하고 봉송 및 개기(開基)·봉토(封土) 등의 날을 가려 정하였다.

선공감(繕工監)에서는 태를 봉송할 도로를 수치하고 역사에 지장이 없도록 대비한다. 봉송일이 되면 봉송 관원을 임명한다.

당상관으로 안태사(安胎使)를 정해 안태 봉송의 책임을 맡게 하고, 배태관(陪胎官)을 차정해 태를 봉송하는 도중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며, 전향관(傳香官)과 주시관(奏時官)을 차정, 안태사와 배태관의 업무를 보좌하게 하였다.

그와는 별도로 당하관으로 감동관(監董官)을 뽑아 일체의 공사를 감독하게 하고, 상토관(相土官)을 파견해 이미 선정된 태실이 길지(吉地)인가를 재확인시킨다. 그 밑에 감역관(監役官)을 두어 도로의 수치와 태실의 역사를 감독하게 한다.

태실의 역사를 마치면 토지신에게 보호를 기원하는 고후토제(告后土祭)·태신안위제(胎神安慰祭)·사후토제(謝后土祭) 등의 제례를 치른다. 태실의 주위에 금표(禁標)를 세워 채석·벌목·개간·방목 등 일체의 행위를 금지시킨다.

금표를 세우는 범위는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다. 왕은 300보(540m), 대군은 200보(360m), 기타 왕자와 공주는 100보(180m)로 정하였다.

▲사진-중종 태봉 입구 
▲사진-중종 태봉 입구 

관할 구역의 관원은 춘추로 태실을 순행해 이상 유·무를 확인한 뒤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태실을 고의로 훼손했거나 벌목·채석·개간 등을 했을 경우에는 국법에 의해 엄벌하도록 정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태실이 가장 많은 곳은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에 있는 서진산(棲鎭山)으로 조선 왕실 13위의 태실이 있어 세칭 태봉이라 한다.

한편 경기도는 그동안 문화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조선왕실의 태봉(태실)을 적극적으로 보호·관리에 나섰다. 2008년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경기도에서는 25곳의 태봉이 확인됐다.

도는 이들 25곳에 대해 지난해 11월부터 12월까지 태봉이 소재한 시·군과 함께 실태를 조사한 결과 13곳의 잔존이 확인됐고, 멸실되거나 위치가 불확실한 곳이 12곳으로 나타났다.

잔존이 확인된 13곳 중 시·군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곳은 가평 중종대왕 태실 및 비, 화성 정숙옹주 태실, 포천 만세교리 태봉, 포천 익종 태봉 등 4곳이다.

도 문화유산과 관계자는 “경기도는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 41곳 중에서 31곳을 보유하고 있는 왕실문화의 보고로서 앞으로 태실 관련 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해 경기도의 새로운 문화자원으로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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