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이 록 교육학 박사. 예장사이버신학교수. 본지논설고문.
명심보감 치정(治政)편을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일명지사(一命之士)라도 구유존(苟有存)심어애물(心於愛物)이면 어인(於人)에 필유소제(必有所濟)니라.’

이 글은 성리학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중국 북송의 명도선생(1032~1085)이 하신 말씀인데요. 그 뜻은 이렇습니다.

‘처음으로 벼슬을 얻은 자라도, 진실로 남을 사랑하는데 마음을 쓴다면, 반드시 남에게 도움을 받을 것이다.’

관직에 오른 자라면 반드시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글입니다. 명심보감 치정 편 첫 머리에 나오는 글인 걸 보면 정치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말 같습니다.

얼마 전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불과 36세의 청년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3선의원이 된 사람입니다. 3선의 중진이지만 아직 47세의 젊은 의원이지요.

저는 정치에 무관심한 편이지만 여야를 떠나서 그분의 정치철학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요즘의 정치 행태를 보면서 “왜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할까?” 아쉽게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 중 한분이 김세연 의원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얼마 전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아니 야당을 초토화시킬만한 발언을 터트렸습니다. 속이 다 후련합니다. 3김 시대에나 나왔을 법한 명 선언입니다.

정치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무엇을 정치라고 말합니까? ‘국민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며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 일’입니다. 그걸 실현해 달라고 국민이 뽑아준 자가 국회의원입니다.

그런 의원들이 근자에 행한 일들을 봅시다. 무엇하나 제대로 협의하여 이룬 것이 있습니까? 그냥 반댑니다. 무조건 국민의 뜻이라며 장외 투쟁만 해댑니다.

내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입니다. 서로 고소하고 고발합니다. 그리고 그게 국민의 뜻이라고 말 합니다. 어이가 없습니다.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질까요? 그것은 사랑이 메말랐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상대를 끌어내려야 그 자리로 올라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의 정자도 모르는 자들의 행태입니다.

명심보감 정치 편에도 첫 자리를 차지하는 글이 오늘 앞서 읽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걸 망각합니다. 눈이 멀어도 깊게 멀었습니다. 이 역시 사랑이 메말라있기 때문입니다.

3김 시대의 정치가 그립습니다. 그들도 군부독재와 맞서기 위해 장외투쟁을 했지만 지금과는 상황이 전혀 달랐습니다. 옳은 것은 쿨 하게 협조했습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후 부터는 정말 정치다운 정치를 했습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정치판은 어떻습니까? 무조건 투쟁입니다. 민주국가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의원나리들의 이런 행태를 보면서 ‘세금내기도 아깝다.‘ 말하는 국민들이 대다수입니다. 이러한 때에 김세연 의원이 국민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발언을 한 것 입니다.

그의 선언 중 다수의 의원 나리께서 새겨들어야할 말이 있습니다.
“권력에 집착하는 탐욕의 민낯이 보기 싫어 눈을 돌리려 해도 정치판은 주인공만 바뀐 채 똑같은 구조의 단막극이 무한 반복되고 있습니다.”

“물러나라고 손가락질은 하는데 막상 그 손가락이 자기를 향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만성화를 넘어서 이미 화석화돼 버린 정파 간의 극단적 대립 구조 속에서 실망과 좌절, 혐오, 경멸로 이어지는 정치 혐오증에 시달려왔음을 고백합니다.”

이 피와 같은 김세연의 말은 비단 야당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여야 모든 의원 나리들이 새겨들어야할 현 정치판의 사실입니다. ‘관직에 오른 자라면 반드시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하는 마음이 완전히 말라버렸습니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마저도 보이 않습니다. 그 판에서 결자해지를 바라는 것은 꿈입니다. 김세연 의원의 선언 이후에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투쟁과 정쟁을 구분할 줄 알았던 정치 9단 김대중과 김영삼과 김종필의 3김 시대가 참으로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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