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 정도로는 피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난스럽던 올여름 찜통더위가 시나브로 그 기세가 꺽여 이제 조석으로는 제법 서늘한 기운이 돈다.

모기의 입이 비툴어진다는 처서가 지난지도 벌써 며칠 전 지났다.
영원히 짙푸르기만 할 것처럼 녹음을 품었던 산과들에도 어느 사이 슬그머니 노르스름한 연초록으로 변색을 시작한다.

가을이 온 것이다. 자연의 위대함이 나타난 것이다.
매양 올 것이 왔는데도 가을이라는 말에 괜 시리 마음이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하기사 얼마 후면 가을의 정점기인 추분이기도 하다.

이제 가을빛을 즐기려는 행락객은 마음이 한껏 부풀시기이다.
봄이면 씨앗뿌리고 여름이면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풍년을 맞이하여 겨울이면 행복해진다는 어느 가수의 노래 말처럼 올 가을이 그저 풍성하고 행복한 겨울을 예비하는 좋은 절기이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또 한달 남짓 지나게 되면 민족대명절인 한가위다.
생활기반에 따라 각기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모여 부모형제간의 끈끈한 정을 확인하며 조상께 문안도 하는 참으로 좋은 우리나라의 고유 명절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 같지만 이 좋은 명절에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이들이 있다. 모두 짐작하는 것처럼 북녘 땅이 고향인 실향민들이다.

자신의 목숨이나 다를 바 없는 부모형제 살붙이들을 가난에 찌든 동토의 사지에 두고 온 이들이 맞이하는 추석은“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그저 사치스러운 표어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올해의 남북 간 분위기로 미루어 볼 때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이미 물 건어 가버린 듯 보여진다. 남과 북 어느 정부의 탓을 따질 수 조차 무의미한 현실 앞에 놓여 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런 이들에 비하면 현재 이산의 아픔 없이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은 한가위 명절을 기화로 자신들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깨달아야 할 듯하다.

아울러서 이번 추석절에 부모형제의 소중함도 함께 깨닫기를 소망한다.
혹여, 자신들의 부모들은 요양원에 보내놓고 자신들은 해외로, 바다로 산으로 명절휴가를 보내는 일이 없는지 한번쯤 자기반성을 해보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다.

그런 이들에게 한마디 전하는 말로 “봄이 오고 가을이 오듯 젊음도 머지않아 황혼을 맞이하게 된다”는 말로 맺음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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